곰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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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애월 살롱드라방에서의 하루
지난해 늦여름 애월 시골 마을에 소담한 카페 하나가 생겨났다. 오가는 이들 사이에서 킨포크식 감성을 지닌 곳이라 회자되며, 적극적 홍보 한 번 없이 애호가들을 만들어낸 공간. 살롱드라방에서 만난 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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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하가로 146-9 살롱드라방. 큰 길가에서 200미터쯤 돌담길을 따라 걸어 들어와야 만나는 뜬금없는 위치의 카페. 그러나 막걸리 공장 내부를 고쳐 만든 이곳은 지난해 늦여름 오픈한 뒤로 찾는 이의 발길이 꽤 빈번히 이어졌다. 담담한 외관 앞에 드리운 캐노피, 건물 뒤로 펼쳐진 화강암 돌담이 운치를 더한다. 문의 070-7797-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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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깔기부터 기둥 세우기, 더하여 가구 제작까지 모두 집주인 이세훈 씨의 손에서 이뤄졌다. 높은 천장 덕분에 2층 다락을 만들었는데, 육지(!) 친구들이 찾아오면 이곳을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곤 한다고.
살롱드라방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20여 분쯤 달리자 전형적 시골 마을의 풍경이 펼쳐졌다. 요즘 글로벌 관광지가 되어 세련된 공간이 넘쳐나지만 제주 특유의 낮은 돌담과 검붉은 흙이 빚어내는 멋이야말로 최고라 생각했던 터. 카페 살롱드라방으로 접어드는 길목은 그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돌담을 경계로 밭과 오솔길이 갈리는 동네였고, 때문에 동네 토박이들만 알고 드나들 것 같은 한적한 위치에서 뜬금없이 카페를 만나게 되는 게다. "처음에는 작업실로 빌렸던 공간이에요. 원래는 막걸리를 만드는 공장이었고요." 주인장 이세훈 씨는 6년 전 제주를 찾아 터를 닦은 '제주 이민자'다.
서울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과 가구 제작의 업을 겸하던 그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제주를 찾았다 한다. 가구 작업에 집중하고자 작업실 겸 집을 구하려는데 그 드넓은 서울 땅에 자신의 여력으로 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더라는 것. 그럴 바에야 '아예 저 멀리는 어떠랴' 하는 생각으로 제주를 찾았던 게 인연이 되었다.
다소의 충동을 뒷받침하는 확고한 실행력은 작업실로 쓰던 막걸리 공장을 신혼집이자 카페로 바꾸어 공사하는 데서도 발휘됐다. "결혼을 하면 작은 카페를 운영하자고 결정한 뒤, 바로 공사에 들어갔어요. 가구 만드는 작업실로 쓰던 공간이어서 나름 대대적인 재단장이 필요했죠. 마루를 까는 것부터 벽 마감, 그리고 가구 제작까지 모든 작업을 제가 진행했고요. 처음 집을 고친 날부터 치면 1년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빌딩을 새로 짓는 것도 아니고 55평 단층집 하나 고치는 시간이었으니, 도시의 셈으로는 지나치게 느린 속도다. 그러나 집주인은 도면 없이 그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생각하며 자재를 고르고, 못을 박고, 색도 칠했다. 살롱드라방이 제주의 킨포크 카페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회자가 되지만 정작 그는 스타일에 대한 개념을 부러 정하지 않았고,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이렇듯 자신의 취향을 열심히 구현하는 게 인테리어 제1의 원칙이었다면, 그다음 신경 쓴 것은 중산간 마을의 주변 경관과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 구멍 뚫린 현무암으로 낮은 돌담을 쌓고 소박한 정원으로 꾸민 것은 담담히 주변에 어울리고픈 집주인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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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대다수 의자와 테이블은 집주인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것. 나무와 철제를 적절히 조합하는 걸 즐긴다는 그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 즉 테이블 다리가 바닥을 긁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귀여운 나무 볼이 달린 테이블도 고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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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한쪽 정갈하게 그릇을 수납해놓은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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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핸드드립 커피만을 고집하는 이 집은 맛있는 커피로도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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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만나는 공간. 플로리스트인 친구가 종종 선물해주는 꽃과 인테리어 잡지, 작업용 앞치마 등이 섞여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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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이기도 한 사진작가 강연욱 씨가 찍어준 사진 작품을 전시해두었다.
솔직한 취향으로 만든 공간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높은 세모 지붕 덕분에 탁 트인 실내가 펼쳐진다. 카페 대신 살롱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데서 감지되는 바처럼, 집주인은 이곳을 찾는 이들이 편안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고 이는 가구 배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게다가 대부분의 테이블과 의자는 물론 조명까지 이세훈 씨가 직접 제작한 것들인데, 그는 디자이너라는 말 대신 엔지니어 혹은 제작자라 자신을 소개했다.
"어릴 때부터 홍대 근처에 살아서 자연스레 디자인 가구 전문가인 김명한 대표님을 뵙게 되었어요. 그 후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aA디자인뮤지엄이 생기면서 다양한 디자인 가구와 인테리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장 푸르베 같은 거장 디자이너는 스스로를 엔지니어라 부르는 것을 알았고, 저도 작업자의 마인드로 작업에 임하겠다고 다짐하게 됐죠."
디자인은 삶을 위한 것이기에 생활 속에서 체득되어야 한다. 운 좋게도 삶 속에서 디자인을 즐기는 이를 '선생님(!)'으로 모시게 된 덕분에 그 또한 가구 쓰는 맛을 느끼게 되었던 것. 도면이나 계획이 없이, 솔직한 자신의 취향으로 만들었다는 가구와 공간에서 마치 외국의 멋진 카페에 들른 듯한 감성이 느껴졌던 것이 그 때문이리라.
카페 뒷문을 열면 나오는 부부의 주거 공간에도 특유의 멋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5평 남짓, 원룸형의 작은 공간이지만 침실과 화장대, 심지어 남편의 숨은 작업대까지 갖춘 게 재미가 있다.
"공사를 하는 동안 아내가 저한테 딱 하나 부탁한 게 화장대를 만들어달라는 거였어요. 화장품의 개수를 묻고, 원하는 높이와 폭을 물은 뒤 맞춤형으로 만들어주었더니 당연히 사준 것보다 훨씬 행복해했습니다. 확 트인 방이어서 공간 분리가 필요했는데, 화장대를 파티션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다. 역시 직접 만들었다는 침대 헤드에는 독서등으로 쓰는 은은한 조명을 디자인해 넣었고, 철물점에서 파는 전형적 공장 조명의 펜던트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멋진 그레이 컬러로 탈바꿈시켰다. 가벽을 하나 쳐서 오롯이 자신을 위한 책상을 놓은 아이디어도 돋보이는데, 덕분에 좁은 공간을 풍족히 누리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좋아하는 배우인 '드니 라방'의 이름을 따온 공간에 자신의 손끝에서 탄생한 가구를 멋지게 풀어놓은 제작자는 앞으로 '살롱드라방'의 감성을 담은 가구 및 제품 제작에 힘쓸 것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는 제주 이민의 리얼 라이프가 결코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덧붙였으나,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는 삶을 목격한 바로는 충분히 감미롭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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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등 달린 침대도 이세훈 씨가 하나하나 세심히 고민하며 만든 것. 집 또한 마룻바닥 까는 것부터 침대, 화장대까지 모두 자신이 만들었으니 스스로를 작업자라 부르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바닥의 사진은 강연욱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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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위해 만든 화장대는 공간을 분리하는 파티션의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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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우드로 마감한 단정한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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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맞은편 가벽 뒤, 좁은 코너 공간에 오롯이 남편을 위한 책상이 숨어 있다. 마음껏 어지르면서 작업의 영감을 떠올리기도 하는 곳이다.
아내의 바느질 작업 공간. 살롱드라방의 큰 뼈대를 남편이 완성했다면 커튼과 패브릭 용품들은 모두 아내의 손에서 탄생한다.
"이세훈 씨가 만든 가구와 조명은 폼을 재지 않아 더 정이 간다. 삶의 터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가구를 만들겠다는 생각도, 빈티지 가구를 해체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다시 제주를 찾기로 한 봄날, 살롱드라방에는 바닷가에서 주워온 나무가 혹은 제주의 돌들이 예상치 못한 멋진 생활 물건으로 변신해 있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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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창 너머로 보이는 이세훈 씨 오토바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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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가을 살롱드라방의 풍경. 캐노피만 보아도 한나절 유유자적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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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L 즉, 아틀리에 살롱드라방은 카페 겸 거주지 옆에 새롭게 만든 작업 공간이다. 이세훈 씨는 빈티지 의자를 해체해 새로운 가구를 만들기도 하고, 철제와 나무를 믹스한 가구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가 제작한 가구들은 오래된 듯 멋스럽지만 심플할 것,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을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앞으로 그의 감성을 담은 생활소품을 만들 계획에 있다고 하니, 제2라운드가 더욱 기대되는 상황.
기획_홍주희 | 사진_전택수(JEON Studio)
레몬트리 2015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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